[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에 나섰지만 AI 스타트업 쪽은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정비 지원이 대기업에 쏠리면서 스타트업은 뒷전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권 역시 투자를 약속했지만 벤처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리한 요구 가능성에 불안은 여전하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7일 국회에서 열린 'AI 시대, 대한민국 새로운 길을 찾다' AI강국위원회 주관 토론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정부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쏟고 있다. 단순히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범부처 차원에서 AI 산업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는 구상 아래 움직이고 있다.
실제 정부의 구상은 구체적 정책으로 하나하나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2일 국가 AI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가AI전략위원회' 설치를 확정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에서 국가AI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 대통령이 직접 키를 잡고 국가 AI 거버넌스를 이끌겠다고 공약했다. 정부는 최근 대통령이 국가AI위원회 위원장에 오르고 위원회가 단순 자문기구를 넘어 실질적인 AI 전략기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신설될 국가AI위원회는 범부처 AI 전략과 정책 및 사업을 총괄·조율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는 AI 관련 △국가비전 및 중장기 전략 수립 △정책 및 사업의 부처간 조정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이행점검 및 성과관리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의결한다.
이번 대통령령 제정은 이재명 정부의 시그니처 정책인 '소버린 AI' 구축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소버린 AI'는 주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소버린(sovereign)'과 인공지능의 'AI'를 합친 말로, 그 국가와 지역의 언어·제도·문화·역사·가치관을 반영한 국산 모델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AI에 활용되고 AI가 생산하는 데이터에 통제권을 가지는' 국가 역량과 제도를 일컫는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적·재정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 수석,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기업인 출신 관료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아울러 재정적으로도 'AI 100조 원 투자'를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AI 산업 지원에 '진심'을 보이자 업계는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AI 스타트업 쪽에서는 '마냥 웃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의 AI 전략이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 있어 AI 스타트업이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 확보, AI 슈퍼컴퓨터 구축 등의 계획을 세웠으나 대부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나 대기업 중심으로 배분된다. 스타트업은 후순위 배정뿐 아니라 자부담 조건까지 감수해야 한다. 모델 학습을 반복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이는 경쟁력 강화에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AI가 이끄는 앱 생태계의 진화: K-스타트업의 글로벌 도약과 성장 지원' 세미나에서 "디지털 전환 시대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 스타트업과 달리 지원 부족과 규제 대응에 발목이 잡혀 글로벌 성장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며 "AI 전환 시대에는 국경이 사라진 만큼 과감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4일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이끌 국가대표 AI 기업 다섯팀을 확정했다.
포털·클라우드의 강자 네이버클라우드, '엑사원(EXAONE)'을 앞세운 LG AI연구원, 890만 실사용자 '에이닷'을 보유한 SK텔레콤, 14년 AI 연구개발(R&D) 내공의 AI 전문기업 NC AI, 유일한 스타트업 '업스테이지' 등이 뽑혔다. 선정된 팀은 GPU를 빌려쓰고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구축·가공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정예 팀 주관사 다섯 곳 가운데 스타트업은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기업인 업스테이지가 유일하다. 업스테이지는 컨소시엄도 스타트업 위주로 꾸렸다. 래블업(GPU 분할 가상화), 노타(모델 학습 및 경량화), 플리토(데이터 전처리 및 평가)가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산업 전반의 AI 도입 확산을 위해서는 뷰노(의료), 마키나락스(제조 국방), 로앤컴퍼니(법률), 오케스트로(공공), 데이원컴퍼니(교육), 올거나이즈(검색 글로벌) 등 각 분야 스타트업을 모았다.
반면 나머지 네 팀은 대기업 계열사가 주관사다.
이에 대기업 독무대 속 유일한 스타트업 주관사인 업스테이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AI 업계 일각에선 네이버, LG, SK텔레콤 등 대기업 주관사 위주로 전열이 짜여 컨소시엄에 들어간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8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재해 관련 금융부문 대응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스타트업 업계의 또 다른 걱정은 금융권의 참여 방식이다. 금융권은 정치권의 '이자놀이' 지적 이후 벤처 투자 확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기관을 향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며 "그렇게 해야 국민경제 파이가 커지고 금융기관도 건전하게 성장·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7월28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협회장과 간담회를 열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금융이 시중 자금의 물꼬를 AI 등 미래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자본시장 및 지방·소상공인 등 생산적이고 새로운 영역으로 돌려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금융권은 향후 조성될 첨단·벤처·혁신기업 투자 100조 원 펀드에 적극 협력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금융투자업권은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기업금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기대와 함께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새로운 자금이 유입된다는 측면에선 환영할 일이지만 벤처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민간 금융권 지원은 '독이 든 사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AI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벤처투자는 수익과 함께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스타트업 업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수익률을 우선시하는 금융권이 유입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벤처캐피탈(VC)과 달리 금융권은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연대보증 등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신한캐피털은 경영난으로 파산한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대표에게 투자금에 이자를 가산한 금액을 반환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이를 두고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모험자본인 벤처투자 후 개인의 고의나 과실이 없음에도 무리한 소송을 진행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A씨는 "벤처캐피탈은 스타트업에 연대보증 등을 요구하지 않지만 금융권은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다면 금융권 자본이 유입되는 것이 스타트업에 마냥 좋다고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