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동남아시아의 캄보디아, 남아시아의 인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아직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 않지만 이들 국가는 K금융의 미래 영토로 평가된다. 이들의 어떤 점이 K금융을 매혹했을까. 아시아 금융신흥국인 그곳에서, 묵묵히 K금융의 영토를 넓히고 있는 이들을 비즈니스포스트가 만났다.
-캄보디아 글 싣는 순서
① 프놈펜 거리 메운 금융사 로고들, 150개 은행의 은밀하고도 뜨거운 전쟁
② KB프라삭 김현래 부대표 "지점만 200여 곳, 현장 뛰며 지속가능 수익 기반 마련"
③ 신한캄보디아 박희진 법인장 “규모보다 내실, 신뢰경영으로 캄보디아인 주거래은행 되겠다”
④ 캄보디아우리은행 손철수 법인장 “건전성 관리와 사업 다각화 ‘투트랙’으로 경쟁력 강화”
⑤ PPC뱅크 이진규 부행장 “이지뱅킹으로 자생력 키워, 예금·대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⑥ 한국수출입은행 최민이 사무소장 “한국 EDCF 차관 3위 국가 캄보디아, 중소·중견기업 진출 징검다리 놓는다”
⑦ 코사인 설욱환 대표 “디지털금융 사회 캄보디아, 핀테크 사업기회 계속 넓어진다”
⑧ 캄보디아은행협회 회장 랫 소포안 “캄보디아는 무한한 기회의 나라, 디지털금융 생태계 확장 계속된다”
- 프롤로그 기사 보기
① '제국의 추억' 좇는 세 나라, 캄보디아 인도 우즈베키스탄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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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에 위치한 신한캄보디아은행 헤드오피스 외관. <비즈니스포스트> |
[프놈펜=비즈니스포스트] “‘남극에서 냉장고를 판다’고 말할 정도로 쉽지 않은 시장이다.”
6월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 대로변에 위치한 신한캄보디아 본사에서 만난 박희진 법인장은 현지 은행시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은행 계좌를 만들어본 국민의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은행들의 경쟁은 너무도 치열하다. 박 법인장의 '남극론'은 경쟁의 심도와 함께 절박함을 드러낸다.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미진하다. 고객 수요와 공급자의 균형이 어긋나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에서 신한캄보디아의 선택은 규모보다 내실이다. 그리고 '단단한 성장'이다.
박희진 법인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박 법인장은 “신한캄보디아는 현재 캄보디아 은행시장에서 자산 규모가 22~23위 정도”라며 “앞으로도 인수합병 등으로 규모를 늘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신한캄보디아는 우량 대출자산을 바탕으로 캄보디아의 부실채권 증가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연체율을 자랑하고 있다.
또 기업금융 등 사업 확장 전략에서도 정보 공개의 투명성 등 리스크 요인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신한캄보디아의 올해 경영 목표도 ‘건전성 유지와 현지 은행 자산 순위 20위 달성’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 국가의 대형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한 캄보디아 은행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천천히 안전하게, 하지만 탄탄한 은행이 되겠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 박희진 신한캄보디아 법인장이 6월11일 캄보디아 프놈펜 본사에서 진행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신뢰와 내실경영을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 인수합병 없이 자체 성장, 올해도 2%대 연체율 유지 목표
신한캄보디아는 2007년 한국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캄보디아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이름은 신한크메르은행이었다.
지역 기반 마이크로파이낸스사 등의 인수합병을 통한 확장 없이 17년 넘게 현지 시장에서 천천히 영업의 뿌리를 내려 자리잡은 은행이다. 신한캄보디아는 본사를 포함해 지점 15개 가운데 14개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집중돼 있다.
나머지 1개 지점은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는 도시, 시엠립에 있다.
영업점이 다 프놈펜에 집중돼 있다 보니 고객과 대출자산 등 사업 기반도 다 프놈펜을 중심으로 한다. 대출의 담보 물건이 대부분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의 주택, 토지다. 지역 소액대출 고객 비중이 높은 다른 한국계 은행들과 차이점이라고 박 법인장은 설명했다.
이런 대출자산과 고객층의 차별화는 신한캄보디아가 캄보디아 건설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부실채권 증가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 됐다. 한 마디로 우량 고객과 우량 자산 위주의 내실경영이 빛을 발한 것이다.
신한캄보디아는 올해 5월 말 기준 연체율이 2.48%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2.05%)보다 소폭 오르긴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은행들의 평균 연체율이 6~7%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선방이다.
캄보디아신용평가기관(CBC)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 말 기준 금융기관의 30일 이상 평균 연체율은 8.46%, 90일 이상 연체율은 6.4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캄보디아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대출시장이 연 평균 20% 이상 증대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리 상승기와 부동산 경기하락 등으로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박 법인장은 “2025년도 연체율 2%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출을 취급할 때 상환 여력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 BPR(업무 프로세스 혁신) 시스템을 통해 대출 취급 전후, 이중 삼중으로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법인장은 건전성 관리와 더불어 올해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 개선에도 힘을 싣고 있다. 이 역시 은행의 본질적 경쟁력을 키워 내실을 다지겠다는 방침이다.
박 법인장은 “신한캄보디아도 신한은행 한국 본사 차입 위주의 조달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며 “본사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법인을 만들기 위해 현지 직원 중심의 큐알 가맹점 영업, 사립학교와 임대용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가, 병원 등을 대상으로 타깃 영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캄보디아 프놈펜 신한캄보디아 본사 사무실 벽면 곳곳에는 2025년 슬로건인 'Expert SBC! Fearless SBC!'가 붙어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 내실과 신뢰 바탕으로 캄보디아 주거래 은행 꿈꾼다
캄보디아 법인의 자생력 강화 노력은 한국 신한은행의 브랜드 경쟁력의 ‘후광’을 멀리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박 법인장은 치열한 캄보디아의 ‘오버뱅킹’ 시장 격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한캄보디아 브랜드 전략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 중 대표적 예가 박 법인장을 비롯한 신한캄보디아 직원들의 명함에 찍혀 있는 한국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신용등급이다. 박 법인장은 신한캄보디아를 맡으면서 은행업의 본질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명함에 S&P와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신한금융그룹 신용등급을 새겼다.
박 법인장은 “우리 본사가 이렇게 안정적이고 탄탄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경쟁력과 호감도를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내실은 직원들로부터 나온다는 게 박 법인장의 신념이다. 현지 직원들의 자부심, 성장도 경영 수치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한캄보디아 본사 사무실 벽면에는 박 법인장이 직접 만든 올해의 회사 ‘슬로건’이 붙어있다.
영어로 'Expert SBC! Fearless SBC!'다. SBC는 신한캄보디아를 말하는 것이다.
한글로 풀어보면 전문가가 되자! 두려움을 없애자!는 문구다. 직원 모두가 전문가가 되고 상사를 어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박 법인장은 해마다 직접 그 해의 목표를 담은 슬로건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문구를 새긴 팔찌를 본인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이전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근무할 때부터 이어오는 전통이다.
▲ 박희진 신한캄보디아 법인장은 인도네시아법인 근무 시절부터 해마다 그 해의 경영 슬로건을 직접 만들어 팔찌로 제작해 직원들과 함께 착용한다. 11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박 법인장은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박 법인장은 “너무 이상적이고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직원들이 회사에 오고 싶고 일하기 즐거운 조직을 만들어서 개인의 삶이 바뀌고 또 바뀐 직원의 삶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은행을 꿈꾼다”고 말했다.
박 법인장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근무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국가에서, 회사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례들을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직원의 성장’을 응원하는 경영철학에서 진심을 느꼈다.
박 법인장은 중장기적으로는 신한캄보디아를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거래 은행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법인장은 “신한캄보디아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안정적 대출자산을 확보하고 브랜드 신뢰를 쌓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예금도 신한에서 하고 외환도 신한에서 하고 이렇게 신한캄보디아를 현지인의 주거래 은행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 법인장은 신한은행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까지 동남아 법인을 두루 거친 글로벌 전문가다.
박 법인장은 2000년 신한은행 명동지점으로 입행했다. 신한은행에서 개인고객부 과장 등을 맡았고 2013년 신한은행이 베트남에서 기업금융 외 처음으로 리테일사업을 준비할 때 베트남으로 발령이 났다.
해외근무를 하고 싶어 지원했다고 한다.
그 뒤 신한베트남 전략기획부 부장, 신한인도네시아 재무이사를 거쳐 2022년 신한은행 본사 글로벌사업본부 부장을 지냈다. 2024년부터 신한캄보디아 법인장을 맡았고 신한베트남 이사회 이사 등을 겸임하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