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에 미국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주는 대신 회사 지분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미국 투자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로부터 설비투자 보조금을 받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을 넘기는 것이 되면, 회사의 성장에 따른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함과 동시에 경영 간섭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주요 주주가 될 경우, 그만큼 삼성전자의 미국 내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설비투자 지원금을 매개로 삼성전자, TSMC 등 외국 반도체 기업에 지분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을 두고, 사실상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등 미국 주요 매체는 현지시각 19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아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의 지분을 미국 정부가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트릭 상무장관은 19일 CNBC와 인터뷰에선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이 그냥 주려 했던 돈을 미국인을 위한 지분으로 바꾸자고 말한다”며 “우리는 단순히 자금을 나눠주는 대신에 그 대가로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대한 지원금을 조건으로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자짓 미 정부가 개별 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제조 능력이 빈약한 미국이 삼성전자와 TSMC 등 외국 반도체 기업을 영향권 아래에 두기 위해 지분 확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국에 우위에 서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370억 달러(약 51조 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대신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47억4500만 달러(약 6조5천억 원)를 받기로 지난해 말 확정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것처럼 보조금을 대가로 회사 주식을 제공해야 한다면, 삼성전자 전체 지분 가운데 약 1.5%를 넘겨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현재 시가총액은 416조 원 가량이다.
미국 정부는 시가총액이 약 1108억 달러인 인텔에도 109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대가로 지분 10%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삼성전자에 미국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주는 대신 회사 지분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연합뉴스>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부족한 공급망 등으로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은 물론 공장 운영 비용이 한국보다 30% 이상 높은 것으로 추산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이 대만보다 비용이 50% 더 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기존까지 미국 설비투자에 따른 비용 상승 분을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으로 일부 메우면, 경제성이 없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보조금이 백지화된다면, 미국 반도체 공장의 경제성 확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장은 최근 연이어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며 향후 미국 사업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의 이같은 난감한 요구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 간섭 위험도 존재한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가 됐을 때, 공장 운영이나 기술 개발 방향 등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핵심 기술이나 영업 기밀이 미국 정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 측은 보조금 댓가로 받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삼성전자 지분 확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분 투자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만큼 현지 사업 추진이 더 원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 애플 등 미국 빅테크로부터 잇달아 대규모 파운드리 수주를 따내면서, 미국 투자 효과를 보기 시작한 상황이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를 등에 없고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 경제성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면 가장 큰 고객인 미국 빅테크로부터 수주를 받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기술력이 비슷하다는 전제 아래 미국 정부가 여전히 자국 기업인 인텔을 더 밀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