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5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는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제조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줄이고 있는데 미국 현지에 공장을 꾸린 현대자동차도 미국의 새로운 공급망에 올라탈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각) 애플은 미국 내 희토류 생산업체인 MP머터리얼즈로부터 희토류 자석을 구매하는 5억 달러(약 694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계약에는 애플이 희귀광물을 재활용 설비를 함께 구축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계약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희토류 장악에 대비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시도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앞서 미 국방부는 4억 달러(약 5550억 원)를 들여 MP머터리얼즈의 우선주 15%를 인수하기로 10일 계약했다.
희토류는 화학 성질이 유사한 17종의 광물 원소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희토류는 스마트폰과 풍력발전 터빈, 전기차 모터부터 군사 무기까지 제작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이에 트럼프 정부가 자국 첨단 제조업과 안보를 지키는 차원에서 희토류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는데 애플이 여기에 화답한 셈이다.
CNN은 “중국은 희토류 제련 공정의 92%를 점유하며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시장 지배력과 비교해 MP머터리얼즈를 비롯한 미국 업체의 희토류 생산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중국 희토류 자석 의존도를 대폭 낮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프로젝트가 순항해도 이르면 3년 뒤에야 성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는 일단 희토류 변수를 줄여 대중국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희토류 합의를 이뤘지만 중국이 수출 재개에 허가 기간을 6개월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4월부터 희토류 7종과 희토류 자석의 수출에 사전 정부 승인을 의무화했다. 승인 절차에 45일 이상 걸려 사실상 수출 중단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대표단은 6월 9~10일 영국 런던에서 진행한 2차 무역 협상을 통해 희토류 제한을 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이 허가 기간 제한으로 희토류 공급 통제권을 유지하려 해 미국으로서는 ‘플랜 B’가 절실한 셈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에 위치한 MP머터리얼즈의 희토류 광산과 제련 설비. 2024년 10월20일 촬영했다. < MP머터리얼즈 >
월스트리트저널은 “국방부 투자로 MP머터리얼즈는 생산 용량을 늘리고 추가 공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됐다”며 “국방부에 납품할 희토류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동차 제조업체나 기술기업에 돌아갈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런 흐름은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둔 한국 업체에게도 희토류 공급망 다각화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 혜택을 받으려면 중국산 소재 비중을 줄여야 하는데 현지에서 구매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첨단제조 세액공제(AMPC·45X)의 전제 조건으로 중국을 비롯한 ‘금지된 외국 단체’(PEE)로부터 조달하는 원자재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추도록 규정했다.
첨단제조 세액공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를 비롯한 기업이 주로 받는다. 현대차와 기아에 배터리팩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도 올해부터 보조금을 탈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10일 보고서를 통해 “최근 미 하원을 통과한 감세안에는 2032년까지 AMPC 지급이 포함돼 있다”며 “현대모비스의 그룹사 물량의 전동화율 30%만 가정해도 연 8천억 원의 손익 개선이 예정돼 있다”라고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지원으로 현지 희토류 생산 업체가 늘어나면 탈중국 공급망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현대차가 MP머터리얼즈로부터 희토류 자석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추정했던 보도도 나왔다.
포브스는 10일자 기사를 통해 “MP머터리얼즈는 세계 5대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2곳과 추가로 자석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며 “현대차와 토요타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
포브스는 MP머터리얼즈가 이미 한국 다른 업체에 희토류 금속(NdPr)을 수출하고 있다는 점을 이렇게 추정한 근거로 제시했다. MP머터리얼스는 2023년 7월 한국 성안머터리얼스와 월 20톤의 원료 구매계약을 맺었다.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가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공을 들이면서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제조 업체 또한 공급망을 다변화할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다만 현대차 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MP머터리얼즈를 언급한 포브스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근호 기자